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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쌍둥이인 도민하와 도민혁이 티격태격되고 있었다.
“이 찐따 쉐리가! 어딜 누님 과자에 손을 대! 뒤질래!?”
“니에, 니에. 과자 많이 처드십쇼. 나보다 5분이나 더 늙은 할망탱구야!”
“처먹긴 뭘 처먹어, 니가 다 처먹고 없잖아! 아, 짜증나!”
와, 사이좋아. 역시나 이래야 남매지.
도민하는 있는 힘껏 자리를 박차곤 내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쥐방울만한게 성질이 참.
아니, 저렇게 싸울거면서 왜 같은 동아리에 들어온거지? 서울대까지야 뭐 그럴 수 있다 쳐. 꼴보기 싫은 형제 때문에 원하던 대학이 아닌 다른 대학에 간다는 건 말이 안 되니까. 같은 과도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인정. 그런데 왜 동아리까지 같은 곳에 가입한 걸까?
이건 궁금해서 못 참을 것 같다.
난 멀대 앞에 앉았다. 그리고 물었다.
“니들은 그렇게 죽고 못 살 정도로 사이가 좋은데 왜 같은 동아리에 들어온거야? 같은 집, 같은 학교, 같은 과면 그것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힐텐데. 왜 동아리까지 굳이 같은데를?”
멀대는 한 숨을 내뱉었다.
“하아, 그게요.”
그리곤 주위를 살핀다. 얌마, 너랑 나 둘 뿐이야. 뭔 얘기를 하려고.
“이건 비밀인데….”
비밀이란 두 글자가 귀에 확 꽂힌다. 비밀 조옷치! 심장이 두근댄다. 짜릿하다. 왠지 재밌을 것 같아.
“동아리실 사람들 다 아는 것 같으니까, 뭐. 대신에 창민이 형한텐 비밀이에요. 그 형도 이미 알 것 같지만 그래도.”
임창민? 잘생기고 돈 많은 부회장? 걔가 왜?
“걱정마. 내가 한 땐 시크릿 가디언 이라고 불렸던 사람이야.”
미안, 실은 나노 주둥이로 불렸던 사람이야. 내 입이 나노입자보다 가볍다나 어쨌다나.
난 연신 고개를 끄덕임으로 이야기를 재촉했다. 어디 비밀 한 번 풀어보시오. 비밀만큼 재밌는게 또 없지.
“제가 여기 들어온 이유는 창민이 형 때문이에요. 제가 같은 고등학교 방송반이었거든요. 직계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창민이형이 절 엄청챙겨줬어요. 그런 형이 여긴 무조건 가입해야 된다고 하니까, 뭐. 선택권이 없었죠. 거기까진 좋았는데…. 문제는…. 하아….”
멀대…, 아니, 도민혁은 한숨을 쉬고는 짜증이 잔뜩 뭍은 목소리를 내뱉았다.
“민하! 그 가시나가 창민이형한테 한 눈에 뿅 갔다는 거에요. 아씨, 창민이형은 왜 민하 눈에 띄어서! 암튼, 그래서 민하 걔도 여기 들어온거에요. 실가는데 바늘이 빠질 순 없다는 쌉소리를 하면서. 아니, 넘볼걸 넘봐야지! 창민이형이 총 맞았어요. 쟤랑 만나게. ”
이럴 때 보면, 내가 어려졌다는게 확 실감이 난다. 사랑에 울고 웃을 수 있는 청춘이란 세계에 내가 서 있으니 말이다. 청춘이구나. 청춘.
그런데, 이 쌖보소. 암만 미워도 가족이고 거기다 쌍둥이 누나인데, 말이 너무 심한거 아냐? 민하가 성격은 좀 그런 것 같지만, 그래도 그 정도면 어디가서 꿀릴 미모는 아닌데 말이야. 가족으로써 동생으로써 같은 편을 들어 줘야지, 이걸 다른 사람 편을 든다고?
“야, 그래도 민하랑 넌 가족이고, 거기다 쌍둥이인데. 민하 편을 좀 들어….”
“선배!”
아, 놀래라. 얘가 왜 갑자기 톤을 높여! 야, 선배야.
“혹시나 민하 걱정하실거면, 하지 마세요. 걔 완전 얼빠에 금사빠라, 저러다 또 더 잘 생긴 사람 보면 뒤도 안 돌아보고 갈아탈꺼니까요.”
아, 그래? 얼빠에 금사빠구나. 더블크라운이네. 걔도 대단한 애구나.
“그럼 민하가 창민 선배 좋아한다는게 비밀이고 그걸 동아리 사람들이 다 안다는거야?”
“네. 선배도 보시면 알거에요. 평소엔 동네 양아치인데 창민이형 앞에선 대가집 규슈가 따로 없거든요. 그러니 누가 모르겠냐고요.”
양아치와 규슈라니, 가족이 하는 말, 그 중에서도 쌍둥이 남동생의 증언이라 신빙성은 그리 없어 보인다. 그래도 그게 만약 사실이라면, 보름달만 뜨면 짐승으로 변하는 늑대인간만큼의 갭이다.
평범치 않아. 위험해. 혹시 모르니 조심해야겠어.
괜히 가입했나?
하, 뭔 놈의 동아리가 위험인물이 이렇게나 많아.
그건 그렇고, 추상미와 임창민도 썸씽이 있고, 임창민과 도민하도 뭔가가 있다. 이것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쯧!
이 좁은 동아리 안에서도 애증의 역학관계가 요동치고 있다. 하기야 아직 순수한 젊음 아닌가. 때뭇지 않은 감정들로만 움직이는 청춘들이니까…. 좋을 때다. 저들도 언젠가는 순수함에 때가 묻을테지.
그리고 깨닫게 되겠지. 인간이 만들어낸 사랑이라는 두 글자가 얼마나 허망한 지를. 그 두글자 밑에 끈적하게 묻어나는 이면들이 얼마나 추악한 지도. 뭐, 지금은 좋을 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