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단백질과 지방의 역학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그 때, 잇단의 무리가 노래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무리의 최선두에 있던 남자가 우리에게 아는체를 하며 다가왔다. 얍삽하게 생긴 첫인상 때문에 살면서 손해를 제법 봤을 것 같은 남자가 큰소리로 말했다.
“이열! 이게 누구신가. 춤신춤왕 회장님 아니신가!”
말투가 왜 저래. 고개를 살짝 틀어 회장의 얼굴을 보니 한여름날 밖에 놔둔 생선처럼 급속히 썩어 가고 있다.
얍삽이는 우리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곁눈질로 본 회장의 얼굴엔 애써서 억지로 짓는 듯한 어색한 미소가 아슬하게 걸려 있다.
회장이 말했다.
“…여긴 왠 일이야?”
이 양반이 더위를 잡쉈나. 딱 보기에도 1차 끝나고 2차로 노래방 온 거구만. 아니나 다를까. 얍삽이의 입에서 내 생각과 같은 말이 나왔다.
“이 양반이 더위를 잡쉈나. 노래방에 노래 부르러 왔지. 왜 왔겠어.”
소름! 근데 얍삽이의 말과 내 생각이 같은 건 좀 언짢은데. 왠지 같은 부류처럼 느껴지잖아.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저급한 짓은 하면 안되는데… 얍삽해 보이는 걸 어쩐단 말인가. 왠지 맘에 안드는 놈인데 말이지.
“아. 그래. 그렇네. 노래방은 노래 부르는 곳이지.”
아니, 이 인간은 왜 이래. 왜 이렇게 횡설수설이야. 저 인간한테 학폭이라도 당한거야? 쟤가 가해자고, 회장이 피해자라도 돼? 학폭 PTSD 라도 도진거야?
“춤신춤왕 뒷풀이 온건가 봐? 우리도 오늘 연습 있어서 뒷풀이 온건데.”
“어, 우리도 오늘 모임 있었어.”
얍삽이의 얇은 입술 끝 한 쪽이 살짝 올라갔다. 으읏, 더 얍삽해보여. 폭풍 레벨업한 얍삽함의 아우라!
“하하, 주신주왕. 그거 딱인데요.”
“그렇지. 크크. 왜 동아리명을 안 바꾸나 몰라.”
“그러니까요. 춤도 안 추면서 춤신춤왕이라니.”
“가끔씩 교내 신문이나 홍보책자 같은 곳에 단과대 댄동들이라고 해서 쟤들이랑 같이 묶여 언급될 때가 있거든. 그럴때마다 참 좆같아. 댄동은 무슨! 알콜중독자 집합소랑 우리랑 같이 묶는게 말이나 돼?”
말 좆같이 하네.
거리도 별로 안 떨어진 곳에서 저리 크게 말하는 건 들으라고 하는 거고. 싸우자고 하는 것 같은데.
허억!
홍익인간의 재림인가. 회장의 얼굴이 마른 산에 번진 화마처럼 시뻘겋다. 꼭 쥔 두 주먹의 등 뒤로 녹색 뱀들이 꿈틀댄다.
그래, 화날만 하지. 거의 제3자나 다름없는 내가 들어도 승질이 날 정도니.
회장의 얼굴에 번진 불길이 거세져 터질듯 하던 그 때, 얍삽이 무리가 룸으로 들어갔다. 빈 방이 난 모양이다.
아, 오늘 노래방 난투씬 구경하나 했는데. 회장이 두른 저 갑빠면 17대 1도 가능할 것 같은데.
회장은 “후우” 하며 한 김을 빼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먼저 들어가. 난 바람 좀 쐬고 들어갈게.”
회장이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럼 난 어째야 하는가.
따라가서 “뭐, 저런 인간이 다 있냐.”며 얍삽이를 씹기에는 회장이랑 나랑 얼굴 본 지도 얼마 안 된 사이이고, 저 둘의 관계나 내막도 모르기에 마땅치가 않다. 그렇다고 알아서 하겠지 하고 모른체 내버려 두기엔 내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