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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앞의 어느 카페.
알바생은 커피 두 잔을 건네며 생각했다.
저 남자, 미소가 참 예쁘다.
“감사합니다.”
– 라고 말하며 남자가 커피를 받던 그 짧은 순간에 그녀는 많은 것을 스캔했다.
손목에 찬 예쁜 명품시계.
준수한 외모.
알바생에게도 감사를 전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 같은 것들.
뒤이어 두꺼비 같은 남자가 –
“감사합니다.”
– 라고 말하며 커피를 받아 갔을 땐 순간 속으로 짜증이 났지만, 그녀의 마음은 이내 앞선 잘생긴 남자의 미소로 가득 차올랐다.
서울대 앞의 어느 카페 2층.
“넌 뭔 알바생한테 그렇게 끼를 부리냐?”
“예쁘잖아. 혹시 알아? 언제 한 번 따먹을 기회가 생길지. 너도 좀 배워라. 꼴릴 때 밑밥 던지면 늦는 거야. 이렇게 기회 될 때마다 틈틈이! 나처럼 부지런해야 1일 1 콘돔이 가능하다구.”
“그래. 너 잘났다. 이 색마색꺄. 오늘은 왠일이냐. 그 춤신춤….”
“스탑! 거기까지! 풀네임으로 부르지 말아 줄래? 들을 때 마다 좆 같으니까.”
“새끼, 정색 보소. 진짜 싫은가 보내. 그래, 그 좆 같은 동아리 부회장께서 오늘은 왠일로 그리로 출근 안 하시고. 이리로 납셨나이까?”
“상미 걔가 오늘 학교에 안 나왔거든. 꼰대가 다쳤단다.”
“아하. 상미 마님께서 출근을 안 하셨구나.”
“썅년, 내가 언젠간 따먹고 만다! 거기다 금테를 둘렀나, 더럽게 비싼 년.”
“하, 이쌖 급발진 보소. 걔한테 쌓인 게 많구나?”
“쌓였지. 그것도 좆나게 많이! 걔 생각하면 아래가 뻑적지근해 미치겠다.”
“너도 참 대단하다. 걔가 이쁘긴 해도 너 좋다고 따라다니는 얘들 중에 그 정도 예쁜 애는 한 트럭 아냐? 왜 그리 집착해?”
“넌 몰라. 새꺄. 그렇게 도도하고 비싸게 구는 년, 그런 년을 꿇어 앉혔을 때의 그 쾌감을.”
“그래. 아주 대단하십니다. 이 뇌가 좆에 달린 색마샊히야. 이런 게 어떻게 서울대 법대에 들어왔지?”
“다 요것 때문 아니겠냐.”
잘생긴 남자는 테이블 위에 있던 차 키를 살랑살랑 흔들어 보였다.
“합격하면 포르쉐, 떨어지면 카드 댕강. 너도 그 선택의 순간이 오면 눈깔 돌아갈걸. 우리 집 꼰대가 사람보는 눈이 정확한거지. 괜히 판사질을 30년씩이나 하고 국회의원까지 된 게 아니라니까.”
그때, 1층의 알바생이 쟁반을 들고 2층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두 남자의 음성이 뚝 하고 끊겼다.
알바생은 군데군데 눈에 띄는 빈 테이블 위에 올려진 빈 잔을 치우기 시작했고 잘생긴 남자는 동행한 남자에게 눈짓했다.
동행남이 1층으로 사라지자 잘생긴 남자는 빈 커피컵 두 개를 들고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본 알바생이 말했다.
“…거기 두시면 제가 치울게요.”
“아뇨. 제가 먹은 건 제가 치워야죠. 커피 맛있던데요. 직접 내리신 거죠?”
“네….”
잘생긴 남자는 생각했다.
‘부끄러워 하는 게 귀엽네. 키는 좀 작아도 비율이… 벗겨놓으면 아주….’
그가 속으로 하는 말과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전혀 달랐다.
“덕분에 맛있게 잘 마셨어요. 다음에 또 봬요. 일하시는 분도 너무 친절하시고 커피도 맛있고. 자주 올게요.”
남자가 뒤돌아서 사라질 때까지 알바생은 많은 것을 또 스캔했다. 그 남자의 왼손에 쥐어져 있던 말모양이 새겨진 차키라던가, 따뜻하고 예의바르면서 예쁜기까지 한 미소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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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몸에 적응할수록 느끼는 건데 이 몸의 발성 구조는 꽤나 좋은 편이다. 이전 삶과는 전혀 다르게.
“아아, 에에, 이이, 오오, 우우.”
시블, 세상 불공평하네.
그게 아닌가? 오히려 좋은 건가.
이젠 내 몸이잖아.
목과 코의 적당한 길이에서 나오는 공명은 내가 그토록 부러워하던 낮은 미성을 만들어낸다.
좋다. 모순일 테지만 샘이 날 정도로 좋다.
“저사람 땀 좀 봐. 여름에 웬 긴팔이니, 보는 내가 다 덥다. 셔츠가 땀에 절어 걸레가 됐네.”
“그러니까, 노래방에 땀 냄새 다 배겠다.”
미안….
온종일 걸었더니 육수를 좀 많이 흘렸네.
다이어트도 하고 세상 구경도 하고 삶에 대한 심도 깊은 고찰도 하고, 그러기엔 걷는 것만큼 좋은 게 없어서.
땀에 절은 긴팔 셔츠는 그러니까….
그나마 봐줄 만한 게 하얀 피부인데 그걸 태워 먹을 순 없었어….
쏴리!
그건 그렇고, 이놈의 귀는 성능이 너무 좋은 거 아냐? 뭔 저 멀리서 소근 거리는 소리가 다 들려!
저딴 소린 안 듣는 게 내 정신건강에 좋다고!
쨍그렁.
난 동전을 바꾸고 코인노래방의 룸으로 들어갔다.
“핫, 둘, 하나, 둘. 사랑을 했다. 핫, 둘, 하나, 둘.”
음향 상태 체크 완료!
마이크 상태 fuxx.
스피커 상태 what the fuxx.
아놔. 예전 스튜디오가 그립다.
초울트라 하이엔드 개비싼 스피커를 사놓고 얼마 써보지도 못했는데. 쩝.
잘 지내지? 개비싼 스피커야.
나도 여기서 잘 지내….
비록 돈이 없어 코노에서 발성훈련을 하고 있지만, 난 괜… 괜찮아.
후, 지나간 옛사랑, 아니, 옛 스피커 생각은 이쯤하고 연습이나 해야겠다.
이곳 노래방은 1곡당 500원을 받는 게 아닌, 5분당 500원을 받는다. 그말은 즉, 반주를 플레이 시키지 않아도 마이크를 사용할 수 있다는거다.이 세계엔 없는 노래로 연습도 하고, 발성훈련도 하는 내게 딱 맞춤이다. 무엇보다 좋은 건 그게 더 싸게 먹힌다는 거. 그 개비싼 스피커를 팔면 여기서 몇 분이나 노래 부를 수 있을까?
난 고개를 흔들어 개똥 같은 생각을 머리에서 털어내고 연습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