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맛이 천재인가 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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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가 다 되어 갈 무렵. 부원들이 하나, 둘씩 동아리방으로 모여 들었다. 소파에 앉아 수다를 떨기도 하고 흩어져 있는 의자에 앉아 싸우기도 한다.

벽에 걸린 시계가 6시 10분을 가르킬 때.

짝 하는 박수와 함께 회장이 말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큼. 잠시만. 입술에 침 좀 바르고. 존경하고 사랑하는 후배님들, 동기님들 테이블에 앉아 주세요.”

그러자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던 부원들이 테이블로 모여들었다. 나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다른 부원들은 테이블 주변에 놓인 소파와 의자에 앉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하나 있었다.

이지애는 회장이 서 있는 자리 바로 앞, 테이블 위에 엉덩이를 걸치고는 회장을 빤히 처다봤다. 회장은 어의없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재재, 넌 여기 왜 앉아?”

이지애의 얼굴에 능청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오빠가 테이블에 앉으라면서요?”

“…….”

“아니, 지엄하신 회장님의 오더를 충실히 따랐건만 왜 그러는데요.”

“야! 넌! 하…. 그래 내가 말 실수를 했네. 미안한데 다른 사람들 처럼 테의블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줄레?”

이지애는 입술을 삐죽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아니, 왜 이랬다 저랬다야. 노친네 아니랄까봐. 기억력이 오락가락하나?”

풉.

난 터져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다른 이들은 자주 있어온 일인마냥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다. 다만, 회장의 눈가옆 핏줄에서 빠직이라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다.

“후우.”

회장은 길게 한숨을 내뿜고는 느릿히 고개를 돌려 테이블 주위에 모인 부원들을 둘러봤다. 공교롭게도 그의 고개가 마지막으로 멈춘 곳은 나였다.

아저씨, 그만 빤히 처다보고 말을 해요. 말을.

회장은 내게서 눈길을 떼곤 테이블의 중간 어딘가에 시선을 두었다.

그럴 때가 있다. 누군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말을 하지 않고 있으면 상대방 역시 입을 떼기 힘들 때가 있다. 그 누군가가 근육질의 산적이라면 상대방은 더욱더 입을 떼기가 힘들어진다. 모두가 회장의 입이 열리길 기다렸다. 그리 길지 않지만 길었던 침묵을 깨고 회장이 말했다.

“일단 갑작스런 모임에도 이렇게 모두 참석해줘서 고마워. 오늘 이렇게 급히 모이라고 한 건. 가을 축제 참여를 의논하기 위해서야.”

회장이 말 한 뒤, 테이블 위에는 여러가지 표정들이 등장했다.

흠, 이것보소. 이거 재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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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표정 중에서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건 임창민의 표정이었다. 지극히 낮은 냉기에 노출이라도 된 듯 순식간에 얼어 붙었다가 냉기를 견디지 못해 부서진 얼굴, 더 인상 깊은 건 순식간에 다시 원래의 표정을 되찾았다는 거다.

“웅아.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축제라니?”

임창민은 반듯한 미소를 지은 채 말했지만 내 눈에는 그 미소가 서늘해 보였다.

회장의 얼굴은 그와 상반됐다. 다부진 얼굴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회장이 말했다.

“동아리를 언제까지고 이렇게 둘 순 없잖아. 우리도 이제 3학년이야. 더 늦기 전에 제 궤도에 올려야지.”

이 때, 뜻 밖의 인물이 끼어들었다. 추상미였다.

“난 찬성. 하자. 해보자.”

난 봤다. 임창민의 미소가 한 껏 짙어진 것을, 그리고 그의 눈동자가 한 층 더 차가워진 것을.

흐음.

뭐지, 이 묘한 분위기는. 재밌네. 재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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