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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애는 고민했다.
그냥 도서관에 갈까?
평소라면 아무도 없을 시간대라 고민없이 동방으로 왔건만 예상치 못한 불청객이 난입했다.
요상한 사람이다.
대게는 공간을 선점해 공부하고 있으면 조용히 해주는게 보통 아닌가? 그런데 느닷없이 춤을 추겠다고 한다.
댄동의 동방에서 춤을 추겠다는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그건 일반적인 상황일 때 이야기이고. 지금은 경우가 다르지.
자고로 남녀칠세부동석이라고….
아, 이건 너무 갔다.
암튼, 남녀가 유별한데, 어찌….
아아악, 이것도 너무 갔어.
…그냥.
그냥 불편하다.
오래 본 사이도 아닌데 한 공간에 둘 만 있는게 불편하고, 하는 짓이 평범하지 않아 더 불편하다.
이지애는 이 자리에서 벗어나기로 마음 먹었다. 조용히 필기구를 정리하고 테이블 위에 늘어놓은 잡동사니들을 백에 넣고 있는 중간에 말 같지도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움 두움 차차 차차 따다따다 앙 아아 아아
이게 대체 뭔!
이지애는 소리의 진원지로 고개를 휙 돌렸다. 그곳엔 쨍한 녹색 티셔츠를 입은 백색 곰 한마리가 율동을 추고 있었다.
저걸 춤이라고 하기엔….
이지애가 보기엔 길태구가 하는 동작들은 춤이라기 보단 율동에 가까웠다. 두 발은 박자에 맞춰 구르고, 오른팔은 수직으로 뻗었다가 수평으로, 왼팔은 수평으로 뻗었다가 수직으로. 이 모든 동작들이 요상한 구령에 맞춰 동시에 이뤄졌다.
흐으음.
그런데 뭔가 좀….
이지애는 길태구의 동작들을 보면서 잘 조형된 기하학 무늬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niziu jyp 댄스 댓글 확인)
수직과 수평으로 뻗은 팔들이 어쩜 저리 똑바르지. 박자에 맞춰 반대 동작을 취했다 원래 동작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는데 흔들림 없이 일정하다.
어라. 이젠 웨이브까지.
저 선배 대체 뭐지?
언뜻 보면 그냥 꿀렁꿀렁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다르다. 볼록 나온 뱃살의 굴곡이 놀랍도록 일정하게 움직인다.
그 뒤로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율동은 계속됐고 이지애는 자신도 모르게 점점 길태구의 율동에 빠져들고 있었다.
화려하지 않다. 예쁘거나 멋있지도 않다. 그저 같은 동작을 반복하다 다음 패턴으로, 그걸 반복하다 또 다음 패턴으로. 어찌보면 지루한 동작들의 연속인데.
대체 이게 뭐라고….
눈을 못 떼겠어.
길태구의 율동에 빠져 한참을 넋놓고 있던 이지애의 어깨가 한 순간 움찔했다. 누군가 이지애의 어깨를 두드렸기 때문이다.
“사람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뭘 그렇게 집중해서 보는거야? 너 설마?”
이지애는 나웅의 말을 막았다.
“오빠, 쫌! 그게 아니라 저 선배 춤추는 것 좀 봐요. 장난 아니라구요. 어디서 정식으로 춤 배운 사람 아니에요? 그런 말 안해요?”
나웅은 장난스런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요거, 요거. 말 돌리는게 더 수상한데. 넋 놓고 태구 처다보는게 딱 첫눈에 반한 표정이던데.”
“아! 아니라니까요. 쫌! 저기 쫌 봐봐요.”
사실은 나웅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문을 열고 들어왔음에도 길태구는 춤에 얼마나 집중한건 지, 자신이 온 것 조차 몰랐고, 이지애는 그런 길태구에 정신을 뺏겨 자신이 들어온 걸 눈치채지 못했다.
둘이서 자신을 유령취급할 때, 나웅은 길태구의 춤을 제법 길게 감상했다. 확실히 예사롭지 않은 동작들이었다. 진짜 춤 때문에 우리 동아리 들어온건가?
그때, 길태구의 구령소리가 급격히 바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