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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앞에 걸어가는 저 남자가 오늘따라 이상했다.
군 제대후 올해 2학년으로 복학한 길태구라는 이름의 선배는 조용, 뚱뚱, 음침으로 이미지가 새겨진 사람이었다.
인사를 해도 건성으로 받아주었으며, 부끄러워하는 느낌도 받았다.
함께 듣는 수업에서 저 선배가 발표를 했을 때, 목소리가 얼마나 떨리던 지.
듣는 사람도 불안하게 만드는 한 없이 낮은 자신감을 가졌던 사람이다.
슬쩍슬쩍 전해 듣기론 집, 학교, 도서관만을 뺑뺑이 도는 사람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오늘, 스터디 모임의 뒷풀이에 참석한 것만 봐도 이상한 일이었다.
매주 있는 모임에 매번 참석은 했지만, 뒷풀이에 참석하는 경우는 지금껏 없었으니까.
그리고 술자리에서의 그 자신감 넘치던 말투와 눈빛. 마치 다른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지혜야,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해?”
현미 언니다.
“아… 아뇨. 그냥… 그런데 언니. 태구 선배님 오늘 좀 이상하지 않아요?”
“그렇지? 저런 선배가 아닌데, 오늘 무슨 바람이 불어서 저러는 걸까?”
“그쵸? 저만 그렇게 느낀거 아니죠?”
“뒷풀이 온 사람들 다 느꼈을 걸. 눈빛 부터가 바꼈잖아.”
“흠…”
이지혜와 김현미는 조금 더 길태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후, 이번에 컴백한 아이돌로 대화를 이어갔다.
한참을 아이돌에 대한 이야기로 열중하던 그녀들의 귀에 나지막하지만 듣기 좋은 미성의 노래가 흘러들었다.
– 오늘은 하루종일 비가 내려요. 가득한 빗소리에 그대 떠올라.
두 여자는 짜기라도 한 듯, 동시에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들의 시선이 닳는 곳엔 땀자국이 증식하는 늘어진 회색 반팔티를 걸 친, 큰 키에 뚱뚱한 남자가 있었다.
길태구 선배다.
분명 길태구 선배가 부르는 노래였다.
“저 선배가 저렇게 노래를 잘 불렀나?”
“그런데 저 노래 들어본 적 있어요? 난 왜 처음 들어보는 것 같지. 노래 정말 좋다. 그쵸?”
“그러게. 좋긴 좋다. 나도 처음 들어보는 노래인데.”
“물어볼까요?”
“그… 그러던가.”
이현미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이지혜는 다다닥 발걸음을 옮겨, 앞서 가던 길태구의 옆으로 붙었다.
“선배님. 그 노래 머에요?”
마지막 부분으로 흘러가던 노래가 멈췄다.
그리고 길태구가 말했다.
“뭐가?”
“방금 부르신 노래 말이에요. 처음 들어보는 노래라서요. 누구 노래에요? 제목은요?”
길태구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내가 만든 노래야. 제목은 아직 없고.”
“에이, 거짓말!”
길태구가 이지혜의 눈을 바라보며 눈썹을 들었다 내렸다.
“진짜야. 그런데 왜?”
이지혜의 눈이 큼지막하게 커졌다.
“진짜요?! 선배가 만든 노래라구요?”
“어.”
“와, 노래 정말 핵좋던데. 와!”
이지혜는 뒤쪽으로 고개를 돌려 따라오던 김현미에게 외쳤다.
“언니, 아까 그 노래 태구 선배가 직접 만든 노래래요!”
그리고 이쪽으로 어서오라는듯 손짓을 했다.
말을 들은 김현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놀란듯 했다.
따로 떨어져 걷던 셋은 어느새 나란히 걷고 있었다.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
캠퍼스 안의 가로등이 노을빛 둥근 원으로 징검다리를 만들고 있다.
길태구는 두 후배의 집요한 요청으로 인해, 같은 노래를 계속해서 불러야 했다.
뒷풀이때 마신 술로 인해,
적당한 취기가 온 몸에 머물러 있었고,
밤 이슬로 촉촉해진 공기가 시원하게 느껴졌으며,
재잘되는 두 후배의 목소리가 경쾌하게 느껴졌다.
나쁜지 않은 밤이었다.